교회마당에 풀들이 자랐다.
그 속에 애플민트도 있고
쑥들도 함께 자란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나
집 주변에 함께 사는 고양이들은
마당의 풀들을 좋아한다.
지나가며 쉬도하고 냄새를 뿌린다.
고양이는 햇살이 많은 곳에 앉아
밤새 젖은 몸을 말린다.
그런데 자주 그리고 빈번히 주변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문의도 없이 차로 풀을 밟으며 주차를 하고
배부른 마음에 허브를 뽑아간다.
그러지 못하게하면 한결같이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여기 하냐고 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풀이 나지 않는다.
새벽기도를 찾는 성도들의 발걸음을 따라
풀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우리는 풀도 보이고 사람이 다니는 길도 보이는데
그들 눈에는 잠시 댈 수 있는 주차장으로 보이거나
문 닫은 교회로 보인다.
그래서 손에 가위를 잡았다.
풀도 좀 뽑고
사람들에게 문을 연 교회처럼 보이려 했다.
그런데 몇 가지 잘랐을까
지나가는 개들이 보이고
볕을 쬐는 고양이가 숨을 풀숲이 보인다.
아 더 이상 못하겠다.
누구를 위한 수고인가?
재밋는 것은 이렇게 몇년을 놀리니
심지도 않은 감나무가 벌써 삼년째 자라고
나물들과 심지어 포도덩쿨도 숨어서 올라오고 있다.
무화과도 두그루 열매를 맺고
무슨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듯
풀을 뽑지 않은 아래서 호작질을 잘 한다.
겨울에 뽑아서 한 번 몰아 태워야하는데
코로나 상황에 타인의 호흡에 실례가 될까
미루었더니 이제 풀 아래서 숨은 것들이 난다.
주차장도 없이 식당을 연 주인이 무슨 할말이 있겠냐마는
타이어에 밟힌 풀들은 찢기고 상하여
잠시 마지막 향기를 남기고 시들어버림을 알런지.
매일 전쟁이다.
나는 풀을 지키고
세상은 왜 풀을 지키냐 묻는다.
[마태복음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