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시판 사용자 여러분께 공지드립니다.
잦은 스팸으로 인하여 게시물 노출 방식을 불가피하게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게시물 등록 방식은 이전과 같고 노출은 관리자의 승인을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글 작성후 24시간 내에 검토후 노출될 예정이오니 이용에 참고하여 주십시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 기독일보
오정현 목사의 박사학위논문이 표절이라고 사랑의 교회 조사위원회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에 대한 2013년4월 23일 국민일보 쿠키뉴스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오 목사는 자신이 199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포체스트룸대학에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가 지난 해 교회 안팎에서 제기돼 왔다. 교회는 조사위를 구성, 지난 1월까지 7개월여 조사한 결과 표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오 목사는 조사위에 “양심과 명예를 걸고 내가 쓴 논문임을 밝힌다.”며 “만약 추후에라도 논문 대필이나 표절 등 그 어떤 부정직한 증거가 나온다면,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역시 동 신문에 따르면, “오 목사는 현재 기도원에 머물고 있다고 밝히면서 “저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로 인해 교회에 어려움을 끼친 모든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정현 목사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고 결론을 내린 조사위원회의 판정에 대해서 사실임을 인정하고 지금은 기도원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오정현 목사가 어느 정도 수준의 표절을 했는지, 그 표절의 죄과가 무엇인지 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를 합니다. 물론 저도 많은 죄를 짓고 있고, 과거에는 참담한 실수를 한 적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온 나라가 인사청문회로 들썩였습니다. 장관 후보자들의 부도덕성에 위장전입문제는 매 정권마다 이슈가 되었습니다. 저도 지금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집을 분양받을 때 저의 이종여동생이 ‘오빠! 우리 시집에다 주소를 옮겨놓으면 분양을 받을 확률이 높으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직장이 가까워서 분당에 전세 살고 있을 때 였는데, 분양받기 위해서 잠시 주소를 옮겨 놓았습니다. 그것이 위장전입이라는 범죄행위인지 인사청문회를 통하여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도 외국에서 짧은 기간 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절실하게 느꼈든 사실은 한국인으로서 외국에서 논문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언제든지 표절의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표절이라는 그분의 행위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지 저로서는 말할 능력도 되지 않고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또한 위의 국민일보 기사에서 말한 것 같이 저분이 자신의 부정직한 증거가 나온다면 자신이 사임하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사임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정현 목사와 영화 밀양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제가 오정현 목사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영화 밀양을 떠올린 이유는 밀양이라는 영화는 ‘죄’와 ‘회개’와 ‘용서’가 가지는 관계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정현 목사의 문제에서 밀양의 문제에 해당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죄는 무엇이고, 용서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오정현 목사가 자신의 논문표절이 드러나자, 자숙하는 의미에서 6개월간 설교를 하지 않고, 봉급의 1/3를 받지 않고, 기도원에서 기도한다고 죄와 회개와 용서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화 밀양에서는 회개와 용서의 순서가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오정현 목사에게 일어난 ‘죄’와 ‘회개’와 ‘용서’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앞에서 저는 논문표절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하나님께 큰 죄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다면, 논문표절이라는 죄는 어쩌면 6개월간 설교하지 않고, 봉급의 1/3를 받지 않고 기도원에서 몇 개월 기도하는 회개(?)로 처리 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처리될 수 있다고 하드라도, 죄의 댓가라는 의미에서 그가 사랑의 교회에 담임목사로 지명 받을 때 그의 박사학위가 그의 능력 평가에 얼마나 기여했는가하는 문제는 차치하드라도 도대체 그런 가짜로 자기를 치장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간주하고 들어야하는 사람들의 참담한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어떻게 합니까? 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하드라도 오정현 목사의 죄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찾아보면 회개가 되는 죄가 있고 그렇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사 63:10]
위의 성경말씀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반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반역한 행위가 성령을 근심하게 한 행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근심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반역이라는 행위는 어떤 행위를 말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사1:2,시78:40,시106:33]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106:33]
위의 시편말씀에서“그의 뜻을 거역함”이란 말의 문자적인 뜻은 성경주석을 참조하면,“그의 영에 대항하자, 거친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성령에 저항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치시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죄악입니다. 마음이 교만한자들에게 볼 수 있는 태도[행7:51]로서 거짓을 말하고, 분노하여 죄를 짓고, 더러운 말[엡4:25~29]을 하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짓는 죄로써 결과적으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0]” “And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with whom you were sealed for the day of redemption.”[Ephesians 4:30, NIV]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Having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Ephesians 1:13 ,NIV]
‘인친다’는 말은 예수님 당시에 소유권과 보증을 ‘인’(Seal)으로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거짓됨과, 노함으로 짓는 죄와 더러운 말을 하는 행위는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다.[엡4:25~31] 성령으로 우리가 인치심을 받았는데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행위는, 성령을 우리로부터 떠나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행위는 바로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행위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행위들[엡4:25~31]은 일반적인 인간의 행태에서 나오는 죄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행위들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새 사람의[엡4:24])행동들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을 근심시키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행동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모독죄에 해당되어, 성령이 우리를 떠나므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And so I tell you, every sin and blasphemy will be forgiven men, but the blasphemy against the Spirit will not be forgiven. Anyone who speaks a word against the Son of Man will be forgiven, but anyone who speak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ot be forgiven, either in this age or in the age to come.” [Matthew 12:31,32 NIV] ----------------------------- [모독의 원어적 의미] 원어 : blasfhmiva 발음 : 블라스페미아 해설 :상스러운, 즉 중상의(사람에 대하여), 또는 불경건한(하나님에 대하여) 참람한 자(-한), 조롱 폭언이란 말 blavsfhmo\" 블라스페모스에서 유래한 말로서 ;\'중상\'(특히 하나님께 대항하여), 침람, 악담, 조롱 여명. blasphemy; 중상(특히 하나님께 대항하여), 참람, 악담, 조롱 --------------------------- 위의 성경말씀[마12:31,32]을 사용하신, 당시의 예수님의 의도는, 예수님의 치료의 능력, 즉 성령의 치료의 권능을 사탄의 것으로 돌리는 죄를 의미합니다. 물론 이 말은 위의 이사야의 말씀[사63:10]에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어떤 징벌을 받는가 하는 문제와도 관계하며, 또한 이 말씀은, 처음 행위로 돌아가지 않으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는 계시록 말씀과도 관계합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오정현 목사에 대한 국민일보 쿠키뉴스를 다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 “당시 오 목사는 조사위에 “양심과 명예를 걸고 내가 쓴 논문임을 밝힌다.”며 “만약 추후에라도 논문 대필이나 표절 등 그 어떤 부정직한 증거가 나온다면,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또한, ‘오 목사는 현재 기도원에 머물고 있다고 밝히면서’ ”박사 학위가 무엇이기에 저의 잘못에 스스로 눈감아 버렸던 것 아닌지\"라며 \"성도들을 시험 들게 하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의심하는 일을 생기게 했음을 통탄한다\"고 말했습니다. -------------------------------------------------- 위의 두 개의 오목사의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위의 말에서 첫 번째 말은 지난1월 까지 7개월간 논문표절을 조사하는 가운데 오목사가 한말입니다. 두 번째 말은 오목사가 논문이 표절이라고 당회에서 결정되고 난후에, 기도원에 머물고 있다고 하면서 동영상을 통하여 한말입니다.
처음의 말은 누구를 향하여 한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교회를 향하여 한말입니다. 그런데 아래 동영상을 통하여 주일 예배 때 교인들에게 한말은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이라는 단순한 행위로, 자기의 행동을 한정하여 시선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교묘하게 위장하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가 있습니다. 물론 박사학위를 내려놓는 행동도 땅에서 푸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도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두번째 말과 박사학위를 내려놓는 행위는 밀양에서 유괴범이 신애에게 ‘자기는 회개해서 지금은 마음이 편안합니다’고 한 말과 그 속성이 매우 유사합니다. 문제의 핵심에서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처음의 말은 하나님과 교회에게 한 약속의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말은 처음 말에서 시선을 논문표절이라는 가벼운 죄로 돌리려는, 가면을 씌우는 언급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 말을 의식하여, 처음의 약속에서 교인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논문표절이라는 가벼운 죄를 강조하고 있는 말이 두 번째 동영상의 언급이 노리는 의도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처음문장에서 ‘양심’과 ‘명예’를 얘기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인치심을 받은 사람[엡4:30]의 ‘양심’과 ‘명예’는, 성령이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성령과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성령으로 인친 사람, 특별히 목사라는 의미에서, 이분은 지금 하나님과 교회를 천치바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위의 처음문장을 말했을 당시에는, 교회는 자기 논문의 표절을 결코 밝혀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기망하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성령의 역사(논문의 표절을 보는 성령의 능력)를 모독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C.S.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면, 위의 첫 번째 말을 할 당시 오정현 목사 자신이 “실제우주와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최초 문제는 박사학위 논문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박사학위 논문 문제가 아닙니다. 돌이켜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 앞에 거짓을 말했고, 거짓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려놓는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라 거짓을 말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약속대로 교회를 사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되돌리는 행위로서 회개가 됩니다. 그렇게 해야 만이, 처음행위로 돌아가는 회개가 되고 그렇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의 생각에 오정현목사의,6개월간 설교를 하지 않고, 봉급의 1/3를 적게 받고(왜 1/3인지 내 머리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지만), 박사학위를 내려놓고, 기도원에서 회개하는 척하는 행위는 추가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로 가중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성령을 모독한다는 위의 성경말씀에서 모독(blasphemy)은(하나님에 대하여)경건치 않은 행위를 의미합니다.
거짓말을 했을 당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성령께서 몰랐다고 주장한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성령께서는 오정현 목사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영적으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권면 하셨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오정현 목사 안에는 거짓의 영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성령의 권면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성령을 근심하게 한 행위로 보아야 하고, 더 이상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오정현 목사의 행위는 성령이 자신의 거짓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간주하는 것으로 보아야하기 때문에, 이제는 성령을 근심시키는 죄에서 그의 죄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성령모독죄로 중심이동 된다고 보아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근심시킨 죄에 대해서,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성령께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자신이 거짓을 말할 당시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바로 성령을 인정하는 행위가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것이 바로 되돌린다는 의미에서의 회개가 될 수 있습니다. 평신도인 나도 아는 사실을 박사학위가 두 개나 되는 목사가 그것도 이해를 못합니까? 6개월간 설교를 하지 않고, 봉급의 1/3를 적게 받고, 박사학위를 내려놓고, 기도원에서 회개하는 척하는 행위들은 소위 말해서 본말전도(本末顚倒)가 되는 행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추가적인 거짓행위는, 확실히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로 발전된다고 보아야합니다.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20~24]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거짓을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위의 로마서 말씀 가운데 모독이란 말은 블라스페메오 (blasfhmevw)로 비방하다. 모욕하다. 조롱하다란 뜻으로 앞의 마태복음12:31절에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의 ‘모독’과 같이 블라스페모스 (blavsfhmo\") 에서 유래한 말로서, 하나님에 대한 불경건한 조롱이나 폭언을 의미합니다.
오정현 목사가 사임하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특별히 옥한흠 목사님이 일생을 받쳐 쌓아 놓으신 사랑의 교회 이미지를(이 이미지는 안티들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이미지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서)시궁창으로 변질시킬 것이고 결국 안티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회를 조롱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은 불을 보듯이 빤합니다. 이런 사실을 방치한다면, 이것은 목사 오정현 이란 인간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6:4~6]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라는 자리는 욕심으로 차지할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시기를 예수님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3~15]
죄와 회개와 용서의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땅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그런데 묘한 것은 오정현 목사는 지금 자신이“실제우주와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밀양과 오정현목사의 ‘죄와 회개와 용서’의 문제는 차이가 있습니다.
밀양에서 용서의 문제는 유괴범이 신애에게, 당신의 귀한자식을 빼앗아간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용서를 먼저 빌어야 했습니다. 밀양의 문제는 유괴범과 신애와의 문제입니다. 그 다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문제는, 논문을 표절할 당시에는, 동영상에서 밝힌 말과 같이 오직 자신의 양심과 관계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에 담임목사로 지명 받고 부터는, 오목사와 교회의 문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논문을 표절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거짓맹세를 하고 부터는 오목사의 논문표절문제는 오목사와 교회와 하나님의 문제로 중심이동이 되었습니다. 아직 오목사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약속대로 교회를 사임한다면, 거짓말은 했으나 (교회를 사임하겠다는)맹세를 지켰기 때문에 거짓맹세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24:3~4]
이 문제가 처음 표면으로 드러났을 당시에 신문기사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또 이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인 지난 2월 10일에는 주일 예배 시간에 강단에서 “사임 협박을 받았다”고 말하며 엎드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이 문제를 제기한 분이 건축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책임지고 사임을 하면 저의 논문 문제는 덮어 주겠다고 하면서 48시간 내에 사임을 하지 않으면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당사자로 지목된 고직한 간사는 논문 표절이 분명한 상황에서 “논문 표절과 대필 의혹으로 사임하는 것보다는 최근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무리한 건축 이슈 등으로 사임하는 것이 오 목사의 재기를 위해서 더 나을 것이라고 권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의 고직한 간사라는 분은 문제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오목사가 전혀 다른 문제인 건축 이슈문제로 사임했다면, 박사학위 논문 표절 문제는 오정현 목사 개인문제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하나님과 교회를 기망하는 문제로 발전하여, 성령을 근심시키고 있으며, 그분의 역사를 훼방하고, 또한 성령을 모독하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목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 밀양에서 신애는 장로를 유혹하고 종찬이를 유혹하려다 종찬의 분노를 사고 난후, 돌아 나오면서 하늘을 처다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한테 절대로 안져”
제가 중학교 때인가 확실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지금 생각에 일본인 작가가 지은 소명(?)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소설에서, 외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강요에 못 이겨 배교를 합니다. 일본의 장군이 예수님의 초상을 땅에 펼쳐놓고 그것을 밟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밟아라! 나는 그렇게 밟히려고 이 세상에 왔다.”
당시에 저는 어렸기 때문에 믿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였는데 우연히 찢어진 그 책을 발견하고 읽다가 책속에 빠져 들어갔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밟아라!’ 는 말씀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너한테 절대지지 않는다.”는 말을 한 신애나, 배교하고 예수님의 초상을 밟는 선교사님이나, 그들이 하나님을 확실히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하나님과 교회 앞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맹세를 하는 목사보다는 그 믿음이 더 좋아 보입니다.
영광은 오직 야웨께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6,17]